초기 앵글로색슨의 정신세계에서의 말

중세사 2023. 1. 23. 01:35 Posted by medievalart_kr

 

 

(*해당 포스트는 Chris Fern의 Horese in Mind을 트위터 포맷에 맞게 발췌하고 문장을 이어붙이고 의역했던 내용입니다.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나 싶어 따로 재번역하지 않고 올립니다.)

 

초기 앵글로색슨의 정신세계에서 말은 사회정치적,영웅적,영적 모티프로써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매장지에서의 말 희생과 공예품,말-인간 조상의 건국신화와 거기서 내려오는 왕들의 혈통이 그 예다.말 도상과 말에 대한 종교적 의식은 기독교 이전 이교신앙의 주요 요소로 추정된다..이러한 주제는 헹기스트(종마)와 호르사(거세마) 전설에서 가장 극적으로 결합한다.헹기스트-호르사는 전쟁마에 탄 지도자의 구현이며,동시에 반인반마의 개념을 내포한다는 주장이 있어왔다.앵글로 색슨의 기원을 신화적으로 설명한 형제의 전설은 아마도 대이주 시대의 구전에 뿌리를 두고 있을 것이다.

문헌은'헹기스트와 호르사 숭배'의 존재에 대해 제한적인 증거만 제공하지만,고고학과 미술사학은 말 신앙이 상당한 규모의 열정으로 존재했다는 것을 보여준다.매장 관습,브로치와 도자기에 말 모티브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며,이 도상,신화의 많은 부분은 그 원천을 대륙 게르마니아의 북부와 남부 스칸디나비아로까지 추적할 수 있다.보다 넓은 유럽적 맥락에서,말은 샤머니즘적 믿음과 연결되어 있으며 수호동물이자 사후 세계로의 운송 수단으로 여겨졌다.그러므로,앵글로 색슨의 말 신앙은 섬 고유의 특이성을 띄고 있지만,또한 범게르만적 우주관의 일부로 봐야 할 필요가 있다.

궁극적으로,앵글로 색슨 영국에서 말을 이용한 제의 의식이 사라지는 현상은 고대 후기 기독교 철학과의 양립 불가능성,그리고 4세기 후반 제국의 짐승 희생의식 금지의 반영이라는 주장이 제기된다.이교신앙의 근본적인 신화와 관념은 헹기스트와 호르사 전설과 같이 살아남았고,8세기에 기록되며 흔적을 남겼지만,교회의 영향으로 다소 무색의,과묵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말 신앙은 게르만 문화에 고유한 것은 아니며,신석기 시대 인도-유럽어족 사람들의 역사적 기록과 고고학적 증거 둘 다에서 증명된다.보통 창작 시기가 기원전 8세기로 소급되는<일리아스>에는,파트로클로스를 위한 미케네식의 장례에서 네 마리의 말이 희생된다.그러나 이러한 말 희생 의식으로 가장 유명한 사례는 기원전 10세기~기원전 4세기의 스키타이-시베리아 민족의 것일텐데,가장 웅장한 무덤에는 수십마리의 말 유해가 묻혀 있다.

말 제의 의식,말 신앙은 기마 유목민족을 통해 초기 중세 시대에 대초원 전역에 널리 퍼졌다.이들 중 괄목할 만한 것은 사마르티아인,훈족,아바르인과 헝가리인으로 세기 초에 카르파티아 평원에 연속적으로 침입했다.훈족 사이에서 승마의 중요성은 여러 로마 저술가들이 주목한 바,암미아누스 마르켈리누스는 그들이 마치'반인 반마인 것처럼'거의 말에 딱 붙어 있었다고 증언한다.유럽 켈트족과 게르만 민족의 말 도상과 말 제의는 이러한 동쪽 민족들에게 영향받았을 가능성이 높은데,중세 초기의 스텝 안장,등자 그리고 카프탄 겉옷을 포함해 여러 승마 기술이 그들과의 접촉을 통해 서방으로 들어왔다.
타키투스는 서기1세기경에 라인란트의 게르만족이 장례의식으로 말을 희생하는 의식을 치뤘으며 말의 유해로 점을 쳤다고 한다.그러나,로마인들 역시 말 신앙을 지녔다는 증거가 있다.갈리아-로마의 말 여신 에포나는 서방 지역의 기병 부대들에게 특히 인기가 있었다.뿐만 아니라,말 희생 의식은,스칸디나비아 부족 사회에서도 청동기부터 바이킹 시대까지 끊이지 않고 전해내려온 전통의 한 측면이었다.잉글랜드에서도,묘지와 정착촌 유적에서 종종 발견되는 말 매장의 흔적은 기독교이전,로마 이전의 것이며,최근의 연대 측정 결과는 어핑턴의 백마 지상화가 청동기 후기/초기 철기 시대에 그려졌다고 추정해 이 시기부터 말 도상이 중요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어핑턴의 백마 지상화


이러한 ‘말 신앙’들이 근저로 하는 것은,사람과의 관계에서 말이 갖는 특수한 지위라고 할 수 있다.관리에 많은 비용이 들며,사냥,전쟁,여행과 뗄 수 없는 관계인 말은 유럽 문화의 이른 단계부터 승마를 높은 지위,권위와 동일시하는 데 활용되었다.로마 사회에서 귀족이 에퀘스 로마누스(기병)로 표현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고대 로마 저술가들은 말이 전쟁을 타고난,충직하고 지적인 동물이라 믿었으며,또 마찬가지 이유로 로마인들은 말고기를 역겹게 보았다.

 

장례식에 부장된 말,화장된 말 그리고 정착지
 
초기 중세,말들은 높은 정치적 의의를 지닌 인물들을 동행하기 위해 장례식에서 살해당했다.서기 482년 벨기에 투르네에서 킬페릭은 말 머리와 함께 묻혔고,그 무덤을 이십여 마리의 희생된 말들이 둘러싸고 있었다.스웨덴의 감라 웁살라에서도 말들과 여러 다른 희생 동물이 부장된 봉분이 있어 어떤 왕권이 감지된다.

킬페릭의 무덤 재구성도


5세기부터 7세기까지 말 매장 풍습은 알라마니,바이에른,롬바르드,라인란트 프랑크,작센과 튀링겐을 포함해 라인강 동안에 널리 퍼져 있었다.말 매장 풍습의 단일 근원을 찾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는데,적어도 로마 시대부터 스칸디나비아 남부와 게르마니아 모두 이러한 희생 제의를 행하고 있었다.그럼에도,아틸라의 정치적 지배 기간에 훈족의 관습이 프랑키아와 스칸디나비아의 말 장례 의식에 새로운 추진력을 주었을 수 있다.
앵글로 색슨은 고인과 함께 말을 매장하는 관습,고인과 말을 함께 화장해 하나 이상의 항아리에 안치하는 관습이 모두 있었는데,보고된 말 화장의 예는 수백마리가 넘으며 그중 다수는 2000개가 넘는 무덤이 있는 단 한 곳의 공동묘지(노포크 스폰힐)에서 왔다.온전한 말 매장은 드물며, 그 사례는 32건에 불과하다.물론 여기는 지역적 차이가 존재한다.말 화장 장례는 주로 북부 노퍽에서 험버 하구까지의 지역으로 제한되고,말 매장 장례는 이스트 미들랜드와 이스트 앵글리아에서 가장 흔하다.전체적으로,말은 장례식에서 가장 자주 희생되는 동물이었다.
대륙 말 매장(700개 이상이 보고되어 있다)은 전형적으로 청동 용기,칼과 같은 귀중품을 갖는 성인 남성 매장을 동반하는데,이는 앵글로색슨도 마찬가지다.가장 호화로운 예는 서튼 후의 17호 무덤과 에리스웰의 4116번 무덤인데 금박을 입히고 동물 도상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마구가 출토되었다.
마구는 좀 더 평범한 다른 무덤에서도 발견되는데,여전히 상대적으로 드물지만,이러한 발견은 앵글로 색슨 시대 잉글랜드에 엘리트 승마 문화가 널리 퍼져 있었음을 입증한다…..유틀란트,작센 지방과 슐레스비히-홀스타인 같은 '앵글로색슨의 고향'땅에서는 규모에서 영국의 말 화장 장례와 비견할 만한 것이 없으며,오직 이주 기간 동안 적은 수의 무덤만 보고된다.따라서 이러한 말 화장 관습은 북게르만족의 것이 아니라,정착한(아마도 2~3세대)지역 인구의 관습임을 스폰힐에서 추론할 수 있다.말 화장 장례 지역은 현지의 영향을 받은 인장 유물,도자기 유물이 우세한 지역에서 지배적이고,1세대 이주민들과 관련된 중앙 지역 매장지에서는 떨어져 있다.이것은 6세기부터 말 화장 지역에서 대륙과 뚜렷이 구분되는 섬 특유의 말에 대한 관념이 발달했음을 시사한다.

6세기 후반부터 7세기까지,잉글랜드에서 말을 고인과 함께 매장하거나 화장하는 예식은 희귀한,엘리트 독점의 장례방식이었다.(여러 마리 말이 희생된 서튼 후의 '왕족'무덤에서 가장 명확하게 드러난다)서튼 후 묘지는 물론 배 무덤으로 가장 유명하지만,이 또한 엘리트 승마 문화의 암시일 수 있다.

서튼 후 매장에 나타난 상징주의

앵글로 색슨의 고대 영시에서,배는 sund-hengesta(바다 종마)와 yo-meares(파도 준마)로 묘사되기도 했던 것이다.

 

이 시기의 게르만 동물 도상은 그 우주론적 중요성이나 연대기적 발달에 따라 연구된 바 있다.멧돼지,용,독수리,물고기,갈가마귀와 늑대,바다뱀에 비해 말은 도상에 덜 나타나지만,그럼에도 이 시기 스칸디나비아 예술의 중요한 구성 요소이다.

앵글로-색슨 잉글랜드에서 동물 도상은 1번 스타일과 2번 스타일로 나뉘며,양쪽 모두 남부 스칸디나비아에서 유래했다.7세기부터 무기와 마구,보석 등을 장식한 동물 도상은 정치적,사회 경제적,이데올로기적 지배와 권력의 합법성을 주장하는 엘리트의 독점물이 되었다. 동물 예술의 의미를 해석하는 것은,그것이 사회-정치적 맥락에서 어떤 역할을 가졌는지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동물 예술의 추상적 형태는 그 내러티브를 해석하는 데 장애물로 보인다.그러나..추상화와 도식화는 그 시대 의도된 청중들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문화적 모티프의 기호였을 것이다.
또한 게르만 동물 양식의 추상화는 내러티브에의 접근을 제한하기 위한 의도적 전략이었을 수 있으며'교육을 받은'감상자에게는 심리적 깨달음을 가져왔을 것이다.아마도,동물 예술의 의도된 레퍼런스는 범게르만적 신화들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게르만 동물 도상이 기독교-지중해 미술의 자연주의에서 벗어난 것은 비기독교적 미학을 창조하기 위한 의식적인 시도였을 수 있다.

1번 스타일은  Tiermenschen(동물-인간)모티프의 반복이다.헬맷을 쓴 인간의 머리에 네 발 달린 동물의 사지를 지녔으며,회전 혹은 '거울상'을 만든 후에 해석할 수 있다.의미심장하게도,이 초기 맥락에서,앵글로 색슨의 동물-인간 모티프는 헹기스트-호르사 등식과 평형을 이루는 것 같다.

‘이중 말 모티프’의 초기 증거들은 로마 붕괴 직후의 주조 장식물,청동 버클들을 포함한다.4세기 후반부터 5세기 중반 사이에 브리튼에서 제조된 버클들은 말머리 쌍을 이루는 것이 특징이며 다양한 정도의 자연주의 경향을 보인다.버클들은 브리튼 섬에서 제작된 것이긴 하지만,한 쌍 말머리 모티프는 아마도 로마-라인 국경,그리고 남부 스칸디나이바와 프랑키아 금속세공에서 영감을 받았을 것이다.그러한 예로,프랑스 지베르빌에서 출토된 4세기 혹은 5세기경의'반다이크'술잔이 있다.

영국의 버클들은,출토지의 분포로 볼 때 토착 민병대를 시사하기 때문에 무비판적으로 이것을 게르만 용병 포에데라티의 상징으로 곧장 식별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하지만 군사적 맥락 위의 말 도상은 분명히 로마-야만인 사이 정체성 시기의 한 징후였다.
앵글리아에서 출토된 게르만식 브로치에서도 강한 수준의 문화적 융합이 암시된다.이 브로치는 로마식 석궁형 브로치의 변형이며 결정적으로 말머리와 발판 장식이 추가되었다.

이러한 타입 브로치는5세기 초반 남부 스칸디나비아와 북독일에서 도입되었고,잉글랜드에서는 켄트에서 요크셔까지 대량으로 생산되었다.길쭉한 말머리는 튀어나온 눈,과장된 콧구멍 등으로 심하게 양식화되었다.이 마지막 세부 사항은 '넓은 콧구멍'을 이상적 말의 조건으로 인용한 4세기 로마 수의학을 연상시킨다.또한,호흡을 돕고 말의 기능을 향상시키기 위해 콧구멍을 째는 앵글로 색슨 관행을 고려할 때 흥미롭다.대륙의 고향에서와는 달리,앵글로-색슨 잉글랜드는 일반적으로 양어깨에 두 브로치를 쌍으로 착용했다.부분적으로 이것은 페플로스형 의상을 고정하기 위해서였지만 이 브로치의 쌍착용은 '헹기스트-호르사'모티브를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했을 수 있다.
다음 이미지는 한 쌍 말 모티프를 잉글랜드와 (유럽)대륙 도상에서 식별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궁극적으로 이 이미지는 종마간 전투에서 파생되었으며, 양식화를 거쳐 최종적으로 문화적 기호로 자리잡았다(시간순이 아님에 주의).e도상의 경우,형식화가 상당히 진행되어 웨스트 서식스 애플다운에서 출토된 브로치의 선례(d)가 없었더라면 알아볼 수 없었을 것이다.
..서튼 후에서 출토된 또다른 투구는 두 개의 반복되는 형상을 보여준다.하나는 말을 탄 기수로,작은 인물에 의해 지지되며,말발굽으로 적을 짓밟는다.두 번째는 쌍둥이 형상으로 승마용 카프탄 덧옷을 입고 창을 휘두르며 춤을 춘다.

기수의 형상은 대륙 유럽과 스칸디나비아 양쪽에서 출토되지만 그 기원은 로마 승리의 도상일 것이다...

로마 주둔군의 묘비석에 나타난 도상

투구의 기수는 그 의미가 뚜렷하게 파악되지 않았지만,영웅적 신,조상의 이미지일 확률이 높다.그러므로 앵글로 색슨적 맥락에서 헹기스트와 호르사 전설의 레퍼런스일 가능성이 있다.여기서,게르만 신화와 정치적 야망을 설파하기 위해 로마 모티브(승리와 귀족적 승마주의)인 기수의 형상은 조작되고 변형되었다. 

...말을 탄 인간의 형상은,반인반마 신의 기호를 만들기 위해 그가 타고 있는 종마와 섞여 변형되었을 것이며,이러한 맥락에서 기수는 오딘,혹은 토르로도 다양하게 해석되었다.
말의 상징주의 중심에는 앵글로 색슨 신화에서 가장 유명한 형제인 헹기스트와 호르사가 있다.형제는 저명한 이교 신 보탄의 후손으로 기록되어 있으며,헹기스트 쪽은 켄트 왕통의 건립자이다.헹기스트는 고대 영어로 남성 명사이며,그 의미는 종마에서 거세마,준마,말 등으로 다양하다.그러나 현대 독어와 네덜란드어로 Hengst는 분명히'종마'이며,이것이 원래 의도했던 의미였을 가능성이 높다.Hors는 고대영어에서 '말'의 중성명사이지만,이 맥락에서 '종마'와 짝을 이루기 위해 거세된 말의 의미를 유도했을 가능성이 있다.헹기스트-호르사 전설의 가장 이른 기록은 비드의 '앵글인의 교회사'이지만,아마도 기독교화 이전 5세기와 6세기 구전 전설에 뿌리를 두고 있을 것이다.다른 7왕국 전설들과 마찬가지로,헹기스트 형제의 전설은 의심할 바 없이 허구적 구성물이다.그러나 이 전설들은 왕들의 계보와 비드의 역사서에 통합될 만큼 앵글로-색슨 사회에서는 신뢰할 만하고, 중요한 사실로 받아들여졌다.짧게 말해,초기 중세의 통치자들은 이러한 유사역사적 영웅들을 통해 왕조적 정통성을 주장했다.

쌍둥이 영웅 숭배는 인도-유럽어계 민족 사이에서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폴룩스와 카스토르,로물루스와 레무스는 그러한 쌍생아 숭배의 예이다.그리고 그 이전에 반은 신성이고 불멸하지만 반은 필멸자인 쌍마-영웅의 이미지는 기원전 2세기 스파르타의 디오스쿠로이, 그리고 기원전 13세기 인도 리그베다의 아슈빈(쌍둥이 기병 형제)에 잘 드러나 있다.긴 머리를 한 기마 형제 모티프는 5세기 스칸디나비아에 도달했고 브로치와 무기 등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며,오딘의 아들들인 비다르와 발레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또한,앞선 시대 로마 군대에서 장교계급을 형성했던 부유한 에퀘스 로마누스 계층은 군사적 컨텍스트에서의 승마의 명성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헹기스트는 '베오울프'에 언급되어 있으며 이 언급은 '핀네스버그 파편'(고대 영시)과 연관되어 있다.유틀란트 인 영웅 헹기스트의 존재는 앵글로 색슨의 헹기스트와 호르사 전설이 유틀란트 기원일 가능성을 시사한다.비교적 최근(19세기)의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지방 전통도, 이 오래된 문화적 연결고리의 반영일 수 있다. 이 지방에서는 농가에 교차된 말머리 박공을 새기는 풍습이 있으며 이 말머리들은 Hengst와 Hors로 불렸다.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의 교차된 말머리 박공

이 시기 스칸디나비아 남부 기원은 고트,롬바르드를 포함해 게르만계 민족 사이에서 공통된 주제였는데 이는 서로마제국의 붕괴이후 남부 스칸디나비아 지역이 정치적,이데올로기적으로 중요해졌기 때문이며 그 지역의 동물 모티프와 신화 등은 지방 권력관계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채택되었을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북유럽의 우주관에 영향을 받긴 했지만, 무덤터의 수많은 말 화장은 동시기(대이주 시기)대륙의 화장터와 비교를 불허하며, 섬 지역 앵글로 색슨의 활발한 말 문화를 시사한다.서튼 후 유적에서 알 수 있는 것과 같이 7세기에 말 매장은 엘리트 계층의 전유물이 되었다.이것은 앵글로색슨 상위 계층이 왕실 계보에 신성한 말을 포함시키는 단계까지 나아갔다는 현상의 반영일 수 있다.이러한 증거들을 종합하면,기독교 이전 앵글로 색슨 종교에서 말이 중요했다는 중대한 사실을 밝혀낼 수 있으며,이는 8세기 노섬브리아에서 제작된 고래뼈 상자(프랑크 상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프랑크 상자(뚜껑)

이 유물은 게르만 전설과 기독교 에피소드들이 복잡하게 얽힌 세계관으로 장식됐으며 의심할 바 없이 엘리트 후원자를 위한 선물이다.말의 도상은 여기서 2개 에피소드에 등장하며 난외를 메우는 장식적 역할도 하고 있다. 후면 패널은 AD70년 유대-로마 전쟁의 예루살렘 함락을 보여준다.

중앙 모티프는 티투스 군대에 의해 포위된 솔로몬 성전이며,성전 안에는 언약궤가 있다.그러나 앵글로 색슨적 재해석을 통해 일반적으로 성소를 지키는 케루빔은 게르만적 4마리 독수리로 대체되었으며,언약궤는 한 쌍의 등을 맞댄 말 위에 얹혀 있다.(그들의 갈기는 명확하게 그려져 있다)수도원 아틀리에의 작업물이긴 하지만, 이 새와 네발 달린 동물(말)모티프를 6세기 수많은 브로치와 버클들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고 싶은 유혹이 생긴다..

말은 그 의미가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오른쪽 패널의 중심 모티프이며 이제는 '잃어버린'게르만 전설을 그리고 있다.


이 패널의 텍스트는 그녀의 적대자인 Ertae에 의해 추방되어 슬픔과 고통의 비참한 소굴인 '슬픔의 고분'에 기거하게 된 Hos의 이야기를 들려준다.왼쪽에는 말 머리에 멧돼지 턱을 한 반인간 Hos가,굴 위에 앉아 잎사귀가 난 가지를 휘두르며 전사(아마도 Ertae)와 마주하고 있다.

그 다음 장면은 황무지의 골풀과,'깨무는'가시나무에 둘러싸인 숫말을 묘사하고 있다.전경에는 또 다른(혹은 같은)굴 안에 수의에 둘러싸인 인영을 묘사하고 있고,그 옆에는 '막대기와 잔'을 들고 망토를 입은 인물이 서 있다.마지막 장면은 망토를 입은 두 인물이 세 번째 인물을 붙잡고 있다.
웹스터는 이 패널이 광야와 추방의 이미지를 다루는 것으로 보았고,자비에서 망각된 기독교적 컨텍스트가 있다고 추측했다.그러나 이 유물의 게르만적 에센스는 좀 더 탐구할 가치가 있다..의미심장하게도 Hos는 앵글로 색슨 신화에서 또 다른 반인간,반동물 캐릭터이다. 고분,잎이 달린 나뭇가지와 나란히 병치되는 것은 동물을 통해서,혹은 동물로 변해서 죽은 조상과 대화하며 산 자를 치유하는 그녀의 샤머니즘 성격을 가리키는 것일 수 있다.이 해석을 따른다면 패널의 새와 말은 영혼들과 대화하는 장면의 표현일 수 있다.기독교 이전 앵글로 색슨 종교 측면에 대한 탐색의 가능성은 여러 학자들이 탐구한 바 있다.
의미심장하게,말과 새는 먼 거리를 이동하는 능력-사후세계로 가는 데 필요한-때문에 이상적인 영적 상징물이며,그 중에서도 종마와 사냥매는 그 ‘고귀함‘때문에 매력적인 영적 수호 동물이다.몇몇 학자들은 스칸디나비아 신화의 오딘의 다리 여덟 달린 말 슬레이프니르가 샤머니즘적 승마를 나타내는 것이라는 주장을 제기한다..

솅비더 화상석에 묘사된 슬레이프니르

..초기 앵글로색슨 컨텍스트의 헹기스트와 호르사 또한 이러한 흔적을 의미할 수 있다..그들은 동물과 인간의 요소를 결합할 뿐만 아니라,필멸하는 왕의 조상들의 세계와 오딘이 지배하는 우주 사이에서 우주론적 위치를 점한다.

고고학적으로 샤머니즘 숭배에 대한 증거를 찾아내는 일은 어렵지만,말 매장 관습은 몇 가지 매혹적인 세부 사항을 제시한다.안장마의 희생,그리고 죽은 자를 위한 식량은 내세로 떠나는 여행을 암시한다.거기에,말의 목을 자르는 행위는 샤머니즘적 관행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머리를 제거하는 행위는 아마도 그 동물의 영혼을 해방하는 의도였을 것이다.
앵글로색슨 교회가 동물 매장을 금지하는 시도를 했다는 증거는 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말 매장 관습은 개종 이후 궁극적으로 모든 영역에서 중단되었다.(다만 이 과정은 즉각적이기보다는 점진적이었을 것이다)
인간 중심적 우주를 강조하는 당시의 기독교 철학은 명백히 동물 희생과 숭배에 적대적이었다.아우구티누스는 저서에서 짐승은 비합리적이고 영혼이 없으며 인간에게 유용되고 지배되기 위해서 창조되었다고 가르치고 있다.기독교적으로 보아 동물을 돌보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지만 인간에게 주어져야 할 애정을 동물에게 돌리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후기 고대 교회는 의식의 일부로서 동물을 희생하는 일은 비기독교 신에게 바치는 것을 암시한다고 보았다.기독교적 관념에서,인류의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희생만이 유일하게 유효하며 정당한 제물이었다.
실질적으로 제국의 동물희생 컬트는 콘스탄티누스 치세에 종료되었으며 이는 391년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공적 및 사적 영역에서 희생제물을 금지함으로써 보강되었다..6세기 동안 대륙과 앵글로색슨 잉글랜드의 말 매장 의식에 일어난 변화는,동물 제례에 대한 불안감 증가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이것은 동물과 인간을 함께 매장하는 관습이 분리된 매장으로 바뀌는 양상으로도 표출된다.6세기 초 이리스웰 고분 4116과 거의 한 세기 뒤의 서튼 후 17호분을 비교해보면 마구만 묻힌 것으로 드러나며,7세기 중반 이후로는 잉글랜드에서 동물 희생을 포함하는 매장은 감지되지 않는다.
(그러나 9세기~10세기에 바이킹의 영향으로 이 관습은 더비셔의 잉글비 화장터와 같은 곳에서 잠깐 재출현한다)6세기 초반 네우스트라시아 프랑키아에서 왕실 장례 의식이 변화된 것은 기독교의 영향으로 추론할 수 있다.킬데릭의 무덤은 말 희생 의식이 치러진데 비해,개종한 그의 아들(클로비스)이 매장된 생드니 바실리카에서는 그런 흔적이 드러나지 않는다.기독교가 5세기와 그 이후로도 견고하게 남아있던 프랑크 심장부에서 말 매장 무덤이 거의 전무한 것은 라인강 동안의,기독교가 오랜 저항을 겪은 지역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개종이 8세기에서 11세기 걸쳐 단계적으로 이루어진 프리지아,니더작센,튀링겐과 스칸디나비아 지역에서 말 매장 무덤 관습이 오래 지속된 것도 우연이 아니다.그러나,기독교로의 개종이 기독교이전 관행을 즉시 근절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6세기 후반에 공식적으로 개종이 이루어진 알라마니아에서는 7세기 후반까지 말 매장 관습이 계속됐으며 기독교의 금박 십자가 사용과 말 매장 관습이 공존한 기간이 있었다...

 

..말을 먹는 것이 앵글로색슨의 잉글랜드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더 넓은 게르만적 관습이었다는 것은 앵글로색슨 선교사인 보니파키우스의 732년 편지에서 적시된다.보니파키우스는 튀링겐 사람들이 야생마와 가축으로 길들인 말을 먹는다고 보고했다.로마의 반응은"더럽고 가증스러운 관행"이며 그것은"가능한 모든 방법으로"금지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이것은 흔히 말 희생을 포함한 이교도 의식에 대한,기독교적 적개심으로 해석되나 궁극적으로는 고전고대 로마의,말고기를 먹는 것에 대한 오래된 혐오에 뿌리를 두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고고학은 기독교 이전 앵글로 색슨의 잉글랜드에서 말고기를 먹는 것이 흔했다는 입장을 지지하지 않는다.정착지의 동물뼈 군집은 말고기가 드물게 섭취되었으며,일상적으로 소비된 육고기의 5%미만을 차지한다는 것을 보여준다.이 소비패턴은 기독교 로마 시대의 농촌 지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러한 맥락에서 말고기는 오직 말이 노동 수명을 마쳤을 때나 궁핍할 때만 섭취했을 것이다.그러나 정착지 안팎에서 발견되는 '특별한 뼈 무더기'는 말고기를 먹는 것이 세속적이라기보다는 신성한 의식일 수 있기 때문에 드묾을 시사한다.
그러한 의식은 최근에 이스트 요크셔의 멜턴에서 발굴된 유적에서도 추론할 수 있다.두 구덩이는 도자기와 여러 말 유해를 포함하고 있는데,말 유해는 머리와 발 부위로 대표되며 그중 하나는 방사성 탄소로 6세기와 7세기 중반 사이로 연대가 측정된다.이 유물은 말고기를 섭취하는 연회가 끝난 후 남은 머리와 발은 습지 호수 가장자리에 묻히기 전에 가죽이 붙은 채로 전시되었음을 시사한다..옥스포드셔의 크레스웰 필드에서는 침몰한 건축물에서 두 개의 말 두개골과 다섯 개의 말 턱뼈가 발견된다.언급한 대로,공동묘지에 매장된 말머리뼈는 무덤가에서 연회와 말 머리 전시가 벌어졌음을 암시한다.
머리와 발굽 의식은 청동기 시대까지 거슬러올라가는 말 숭배의 의식이다.그러나 역사적 기록은 오직 로마와 바이킹 시대에 한해 남아있다.이 의식은 로마 철기시대의 스칸디나비아 동부・남부에서 가장 두드러지며 대이주 시대까지 지속된다. 스웨덴의 욀란드는 백마리가 넘는 말이 묻힌 장소로 유명하며 경마 및 종마간 싸움 붙이기와 종교적인 연회가 벌어졌다고 추정된다.


(결론부 생략)